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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5단계, 꼭 순서대로 겪을까요? 애도의 흐름을 이해하는 법

상실의 5단계인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은 모두 겪거나 순서대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연구 해석의 한계와 타협·수용의 의미를 짚고, 현재 감정과 일상의 어려움을 살피는 기준을 안내합니다.

· · 4분 · 건강

핵심 요약

  • 상실의 5단계는 모두 겪거나 정해진 순서대로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 다섯 감정은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는 참고로 활용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먼저 살펴보세요.
  •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용과 슬픔·그리움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 도움이 필요한지는 단계보다 고통의 크기와 지속 정도,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기준으로 살펴보세요.

사별 후 겪는 애도에서 상실의 5단계로 알려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을 모두 경험해야 하는 것도, 정해진 순서대로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겹치기도 하고, 잦아들었던 감정이 다시 올라오기도 해요.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슬플 수 있고요. 어떤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애도를 잘못하고 있다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먼저 권하고 싶은 건 '단계'라는 말이 주는 순서 감각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앞 단계를 끝내야 다음으로 넘어간다고 여기면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 진도를 매기게 되기 쉽거든요. Marie Curie의 애도 안내도 모든 사람이 따르는 고정된 단계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다섯 범주에 딱 들어맞지 않는 감정까지 포함해서, 지금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세요.

연구가 보여 준 순서를 내게 그대로 대입하기 어려운 이유

2007년 JAMA에 발표된 연구는 미국 사별자 233명이 사별 후 1~24개월 동안 보인 반응을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짚을 부분은 측정 항목이에요. 익숙한 다섯 범주가 아니라 불신·그리움·분노·우울·수용을 쟀고, 특히 '타협' 자리에 '그리움'이 들어갔습니다. 연구진은 반응별 척도를 재조정한 모형에서 각 반응이 최고점에 이르는 순서가 가설과 일치한다고 보고했어요.

흔히 헷갈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집단에서 나타난 최고점의 순서를 누구나 거쳐야 할 순서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의 반응을 모은 흐름만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감정을 먼저 겪었는지까지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이 연구에서 수용이 관찰 기간 전반에 걸쳐 가장 높게 보고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수용이 맨 마지막에야 나타난다는 해석과는 거리가 있는 결과예요.

모형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도 구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1969년 저서 《On Death and Dying》는 자신의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와의 면담에서 시작됐어요. 처음부터 일반 사별자의 회복 순서를 검증하려고 만든 연구는 아니었습니다.

잔잔한 수면의 여러 지점에서 크기와 선명도가 다른 물결이 퍼져 나와 서로 겹치고, 가장자리에는 작은 돌들이 놓여 있다.
겹치는 물결처럼, 마음의 반응에도 여러 결이 있습니다.

몇 단계인지보다 지금 어떤 감정인지부터

상실의 5단계는 지금 마음에 이름을 붙여 보는 참고 정도로 쓸 때 가장 쓸모 있다고 봅니다. 무엇이 믿기지 않는지, 분노와 슬픔 중 어느 쪽이 더 두드러지는지 살피다 보면 내가 겪는 어려움을 말로 설명하기가 조금 수월해질 수 있어요. 다섯 이름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하는 것도, 다음 감정으로 넘어가려고 애써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타협'은 뜻을 오해하기 쉬운 말이라 따로 짚어 둘게요. 실제 상대와 협상하는 행동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때 달리 행동했다면"처럼 과거를 되짚으며 결과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가정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과 실제로 내게 책임이 있다는 판단은 따로 떼어 놓고 보세요.

받아들였다고 느낀 뒤에 다시 화가 나더라도, 그것만으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고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곁에서 말을 건넬 때도 마찬가지예요. 감정의 단계를 판정하기보다 지금의 어려움을 묻는 쪽을 권합니다. "아직 부정 단계네"라고 말하는 대신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든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면 상대가 자기 마음을 설명할 여지가 생기거든요. 단계 이름을 붙이는 일보다 당사자의 말을 듣는 일이 먼저입니다.

수용을 슬픔의 끝이나 애도의 마감일로 보지 마세요

수용은 고인을 잊거나 슬픔이 사라진 상태라기보다, 상실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과 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얼마든지 함께 있을 수 있어요. 슬픔이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직 수용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하면, 내 안의 변화를 너무 좁은 잣대로 재게 됩니다.

창가에서 한 사람이 작은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옆 탁자에는 컵과 덮인 사진첩, 접어 둔 목도리가 놓여 있고 빈 의자에도 햇빛이 비친다.
기억을 위한 자리 곁에서 오늘의 생활도 이어집니다.

하나 더 조심할 부분은 '우울'이라는 이름이에요. 모형에서 감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우울을 곧바로 우울장애 진단과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도움이 필요한지 가늠할 때는 몇 번째 단계인지보다 고통이 얼마나 크고 오래 이어지는지, 일상생활에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를 먼저 보세요. 미국정신의학회의 안내 역시 지속적인 강한 애도와 일상 기능의 어려움을 함께 다룹니다.

상담을 요청하려고 특정 기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애도에서 ‘타협’은 어떤 뜻인가요?
실제 상대와 협상하는 행동뿐 아니라, “그때 달리 행동했다면”처럼 과거를 되짚으며 결과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가정도 포함합니다. 그런 생각이 든다는 사실과 실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판단은 구분해야 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인 뒤 다시 화가 나면 애도가 처음으로 돌아간 건가요?
다시 화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처음으로 돌아갔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도 중에는 여러 감정이 겹치거나 잦아들었던 감정이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별 후 상담을 받으려면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하나요?
상담을 요청하기 위해 특정 기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고통이 얼마나 크고 오래 이어지는지, 일상생활에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를 먼저 살펴보세요.

출처

  1. 5 Stages of Grief® — Elisabeth Kübler-Ross Foundation
  2. Stages of grief — Marie Curie
  3. An Empirical Examination of the Stage Theory of Grief — JAMA, 2007
  4. Stages of Grief Portrayed on the Internet: A Systematic Analysis and Critical Appraisal — Frontiers in Psychology, 2021
  5. Prolonged Grief Disorder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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